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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과 역사 권력: 성곽 유적이 보여주는 방어 전략의 변화

📑 목차

    발굴로 읽는 역사 관점에서 성곽 유적은 단순한 ‘벽’이 아니라, 권력이 어떤 위협을 상정했고 어떻게 자원을 동원했는지 보여주는 방어 전략의 기록이다. 성벽의 축조 방식, 문지 구조, 해자·치 같은 시설의 변화는 시대별 군사 기술과 정치 구조의 변화를 함께 드러낸다.

     

    발굴과 역사 권력: 성곽 유적이 보여주는 방어 전략의 변화

    발굴과 역사 권력: 성곽 유적이 ‘방어 전략’의 언어가 되는 이유

    발굴로 읽는 역사에서 성곽 유적은 눈에 보이는 거대 구조물이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구조가 만들어진 배경에 역사 권력의 의사결정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성곽은 단순히 외부를 막는 벽이 아니라, 어떤 위협을 상정했는지, 어디를 지키려 했는지, 얼마나 오래 버티려 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계획을 실행할 만큼 권력이 인력·자재·시간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까지 보여주는 물질 증거다.

     

    문헌이 “누가 성을 쌓았다”를 기록한다면, 발굴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순서로, 어느 구간을 더 강하게 만들었는가”를 보여준다. 성곽 유적을 발굴할 때는 성벽만 보지 않고 성벽이 놓인 지형, 주변의 해자(도랑), 출입을 통제하는 문지(문터), 적의 접근을 꺾어 시야를 확보하는 치(돌출부), 내부 도로와 배수 시설까지 함께 본다. 이런 요소들은 ‘방어’라는 목적 아래 서로 맞물리며, 그 맞물림 방식이 곧 당시의 접근 통제이다.

     

    특히 성곽은 시간이 지나며 수리·증축·개축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 층위 기록을 통해 “변화의 순서”를 복원할 수 있다. 이 순서가 복원되면, 성곽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권력이 위협을 재정의하고 방어 전략을 업데이트해 온 과정의 타임라인이 된다.

     

    나는 성곽 유적을 볼 때, “높고 두꺼운 벽” 자체보다도 문지와 해자 같은 출입·접근 통제 시설이 더 권력의 의도를 직접 보여준다고라고 생각한다.

     

    성곽 유적의 구조 변화: 토성·석성·복합 성벽이 말해주는 기술과 자원

    성곽 유적이 보여주는 접근 통제의 변화는 먼저 축조 방식에서 읽힌다. 가장 기본적인 구분은 토성(흙성)과 석성(돌성)이지만, 실제 발굴에서는 흙과 돌이 결합된 복합 구조가 자주 확인된다. 흙은 대량 동원이 쉬워 빠르게 성벽을 만들 수 있지만, 유지·보수와 내구성에서 한계가 생길 수 있다.

     

    반면 돌은 가공과 운반, 축성 기술이 필요해 시간과 비용이 더 들지만, 구조적으로 더 안정적인 방어선을 만들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돌이니까 더 발전했다” 같은 단순 진화론이 아니라, 성곽이 놓인 지역의 지형·자원·정치적 필요가 축조 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발굴 현장에서 성벽의 단면을 보면, 판축(흙을 층층이 다져 올리는 방식)의 흔적, 석렬(돌을 줄지어 배치한 기초), 협축(흙과 돌을 섞어 안정성을 높인 구조) 같은 기술적 선택이 드러난다. 또 성벽의 폭과 기초 깊이, 배수 시설의 유무는 단순한 기술 수준만이 아니라 “얼마나 오랫동안 방어를 지속할 계획이었는가”를 말해준다. 방어 전략은 성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성벽 앞의 해자 깊이와 폭, 해자를 파낸 흙으로 성벽을 보강했는지 여부, 성벽의 경사(사면) 처리 방식은 적의 접근을 얼마나 어렵게 만들려 했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해자가 깊고 성벽 기초가 단단하며 배수까지 갖추었다면, 이는 단기 방어가 아니라 장기 거점을 염두에 둔 계획일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성벽 일부 구간만 유독 두껍거나 보강이 집중된 흔적이 있다면, 그 방향이 주요 침입로였거나 정치적으로 가장 지켜야 하는 지점이었을 수 있다. 이때 발굴로 읽는 역사는 “성벽이 있다”를 넘어 “왜 그 구간이 강화되었나”라는 질문으로 역사 권력의 우선순위를 복원한다.

     

    나는 성곽이 전체적으로 완벽하지 않아도, 특정 구간만 집요하게 보강된 흔적이 있으면 그 사회가 두려워한 위협이 어디였는지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문지·치·해자·옹성: 출입 통제와 시야 확보가 방어 전략을 바꾼다

    성곽 유적에서 방어 전략의 변화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요소는 문지와 그 주변 시설이다. 문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이지만 동시에 가장 취약한 지점이므로, 역사 권력은 문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로 성곽의 성격을 드러낸다. 발굴에서는 문지의 기초석, 문루(문 위 건물) 흔적, 문로(문으로 이어지는 길)의 굴곡, 성벽과 문지의 접합 방식이 확인되며, 때로는 문의 앞에 옹성(문을 감싸는 반달형 성벽)이나 성문을 ㄱ자·ㄴ자 형태로 꺾어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가 확인되기도 한다.

     

    이런 구조는 단순 장식이 아니라, 적이 직선으로 돌진하지 못하게 하고 방어자가 측면에서 공격할 시간을 확보하는 설계다. 즉 성곽 유적에서 방어 설계의 변화는 “더 높게”만이 아니라 “더 통제 가능하게”로 이동한다. 또한 치(성벽에서 돌출된 방어 거점)는 방어 전략의 고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치는 성벽을 따라 시야와 사각지대를 줄이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만든다. 발굴 단면과 평면에서 치의 배치 간격과 돌출 길이가 확인되면, 성곽이 단순한 경계선이 아니라 적극적 방어를 위한 플랫폼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해자 역시 단순한 도랑이 아니라, 깊이·폭·내부 처리(물 채움 여부, 방책 설치 가능성)에 따라 적의 접근을 지연시키는 방식이 달라진다. 이런 시설들이 한 번에 갖춰진 경우도 있지만, 발굴 층위 기록을 보면 초기에는 단순 성벽만 존재하다가 위협이 커지거나 군사 기술이 변하면서 문지 보강, 치 설치, 해자 확장 같은 단계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 변화의 순서는 “권력이 어떤 시점에 방어 체계를 재설계했는가”를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나는 문지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그 시대 사람들도 ‘전쟁은 결국 출입구 싸움’이라는 걸 체감했을 거라 예상이 된다.

     

    발굴로 읽는 역사 결론: 성곽 유적 변화는 권력의 위협 인식과 통치 방식의 기록이다

    정리하면, 발굴과 역사 권력을 연결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길은 성곽 유적의 “변화”를 층위로 복원하는 것이다. 성벽의 축조 방식이 바뀌고, 문지와 옹성이 보강되고, 해자와 치가 추가되는 과정은 단순한 건축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권력이 상정한 위협이 달라지고 방어 전략이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또한 성곽 유적은 군사만이 아니라 통치 방식도 드러낸다.

     

    장기간 유지되는 성곽은 지속적 보수와 인력·물자의 공급을 전제로 하며, 이는 행정력과 경제력, 그리고 주민 동원 체계가 작동했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일부 구간만 급히 보강된 흔적이 반복된다면, 위협이 급박했거나 중앙의 통제가 느슨해 지역 단위의 대응이 강했을 가능성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