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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로 다시 쓰는 역사, 지층이 알려주는 시간의 순서

📑 목차

    발굴 현장에서 지층을 읽는 방식은 역사를 “다시 쓰는” 가장 단단한 근거가 된다. 층위 기록, 유물의 위치, 교란 판별, 상대·절대연대 결합까지 지층이 알려주는 시간의 순서를 한 번에 정리한다.

     

    발굴로 다시 쓰는 역사, 지층이 알려주는 시간의 순서

    발굴로 다시 쓰는 역사: 땅속 기록이 텍스트가 되는 순간

    발굴은 “무언가를 찾아내는 작업”이라기보다, 땅속에 남은 사건의 흔적을 순서대로 복원하는 작업에 가깝다. 같은 유물이라도 어느 지층에서, 어떤 층위 관계로, 무엇과 함께 나왔는지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예를 들어 동일한 토기 조각이 표토에서 흩어져 나온 경우와, 한 번도 건드려지지 않은 주거지 바닥의 층위에서 다른 생활 유물과 함께 나온 경우는 해석의 무게가 다르다. 발굴이 역사 서술과 닮아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유물 자체가 아니라, 유물이 놓였던 맥락(context)**이 시간을 설명한다. 그래서 발굴 현장에서는 “어떤 것을 발견했는가”보다 “그것이 지층 속에서 어떤 관계를 이루는가”를 먼저 기록한다. 지층은 무조건 과거를 그대로 보존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기록된 지층은 사건의 전후관계를 말해 준다. 결국 발굴은 “땅을 파는 일”이 아니라, 지층과 층위를 문장처럼 읽어 역사의 문단을 재구성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지층이 알려주는 시간의 순서: 층위(스트라타)로 읽는 과거의 배열

    지층을 시간으로 해석하는 가장 기본 원리는 상하 관계다. 일반적으로 위에 있는 층은 아래의 층보다 늦게 형성되며, 아래층이 먼저 쌓이고 그 위에 새로운 퇴적·활동 흔적이 덮인다. 이 단순한 원리가 발굴에서는 강력한 “시간의 기준선”이 된다. 다만 현실의 현장은 교과서처럼 깔끔하지 않다. 흙은 비, 물길, 동물 굴, 뿌리, 인간의 재개발 같은 요소로 계속 섞이고 잘린다. 그래서 발굴자는 “층이 있다/없다”를 단정하기 전에, 경계의 성격을 본다. 색·입도·단단함의 변화, 포함물(숯, 자갈, 조개껍질, 점토덩이)의 밀도, 눌림과 다짐 흔적 같은 미세한 차이가 층위를 구분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층의 모양”이다. 평평하게 이어지는 퇴적층인지, 구덩이처럼 파고 들어간 흔적인지, 벽체 기초처럼 직선적으로 끊기는지에 따라 그 층이 만들어진 행위(퇴적, 굴착, 매립, 붕괴)가 추정된다. 현장에서는 이런 관계를 도식화해 층위의 전후를 정리하는데, 결국 지층을 읽는다는 것은 ‘겹침’과 ‘절단’의 관계를 따라 시간의 순서를 세우는 일이다.

     

     

    층위와 유물이 만날 때: 상대연대에서 절대연대로 넘어가는 방법

    지층이 “순서”를 준다면, 유물은 그 순서에 “내용”을 채운다. 발굴에서 가장 먼저 얻는 시간 정보는 보통 상대연대다. 같은 지층에서 함께 나온 유물 조합, 토기의 형태 변화, 금속기·유리의 제작기법, 기와·벽돌의 규격 같은 것은 시기를 가늠하게 해 준다. 하지만 상대연대만으로는 “몇 년대”까지 못 박기 어렵다. 그래서 현장과 연구실은 절대연대 측정을 병행한다. 대표적으로 숯·뼈·패각 같은 유기물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의 후보가 되며, 토기나 퇴적층은 상황에 따라 다른 물리적·화학적 기법이 적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핵심은 방법 자체보다 시료의 맥락이 정확한 가다. 같은 숯이라도 난방 흔적의 숯인지, 훗날 불이 들어가 섞인 숯인지에 따라 연대가 흔들린다. 그래서 좋은 발굴은 “측정 결과”보다 먼저 “시료가 나온 층위의 신뢰도”를 확보한다. 시료 채취 위치, 깊이, 주변 유물과의 관계, 오염 가능성(뿌리 침투, 지하수, 최근 매립)을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상대연대(형태·조합)와 절대연대(측정값)를 서로 교차검증하면, 지층이 말해 준 시간의 순서가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연대의 사슬로 바뀐다.

     

     

    교란된 지층에서도 다시 읽기: 뒤섞인 시간 속에서 역사를 복원하는 결론

    발굴을 하다 보면 “시간의 순서”가 무너져 보이는 순간이 자주 온다. 근대의 배수관이 고대층을 관통하거나, 나무뿌리가 유물을 끌어올리거나, 작은 동물의 굴이 층을 섞어놓는 일이 흔하다. 이런 교란은 지층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사건 기록이 된다. 중요한 것은 교란을 숨기지 않고, 교란 자체를 층위로 인정해 언제, 무엇이, 어디를 잘랐는지를 분리해 기록하는 태도다. 예를 들어 구덩이 흔적은 주변 퇴적층을 절단하고 내부를 매립물로 채우는데, 이때 구덩이를 판 행위가 하나의 시간 점을 만든다. 구덩이 내부의 매립물이 주변층보다 늦고, 구덩이 아래의 원지층은 더 이르다는 식으로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다. 결국 발굴로 다시 쓰는 역사는 “완벽한 보존”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지층 속에서도 층위 관계를 끝까지 추적하고, 유물·시료·기록을 교차시켜 가장 설득력 있는 시간의 순서를 만드는 과정이다. 지층은 말이 없지만, 제대로 질문을 던지면 “어떤 일이 먼저였고, 무엇이 나중이었는지”를 꾸준히 대답해 준다. 그 대답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이 바로 발굴이 역사에 기여하는 방식이다.